저자가 찾아본 어떤 사전에도 전문직 윤리(professionalism)는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 전문직(profession)은 대개 “어떤 학문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을 타인의 일에 적용하는 직업” 정도로 정의되었으나, 윤리적 측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보험계리의 세계에서 전문직 윤리란, 다른 계리사들이 합리적으로 기대하고 관련 보험계리 전문직 단체가 제시하는 바에 따라, 계리사의 업무를 올바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전문직 윤리는 계산을 잘하는 능력(기술)과는 다르다. 그것은 고객·고용주·대중·동료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 그리고 전문직의 품위와 진실성을 지키는 판단의 문제다. 핵심은 “동료 계리사들이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수준”이라는 전문가 공동체의 잣대다.
영국·미국·호주·캐나다의 보험계리 전문직 단체는 모두 정회원(Fellowship) 취득 전후에 전문직 윤리 과정(professionalism course) 이수를 요구하며, 다른 많은 나라도 비슷한 제도를 둔다. 영국 과정의 목표는, 가상의 현실적 상황에서 전문직 행위기준(Professional Conduct Standards)을 적용해 보는 경험을 주는 것이다.
영국의 행위기준은 문구뿐 아니라 그 정신까지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전문직의 품위와 진실성을 지키는 계리사의 판단에 의존한다. 계리사는 대중·고용주·다른 계리사·다른 전문직 종사자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추고, 다른 계리사가 합리적으로 기대할 만한 행동·진실성·역량·전문적 판단의 기준을 보여야 한다.
계리사의 주의의무(duty of care)는 그의 자문·정보에 합리적으로 의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조직에까지 미칠 수 있다. 계리사는 누가 고객인지,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 어떤 자격으로 행동하는지를 모두에게 분명히 해야 한다. 계리사의 책임은 개인적인(personal) 것이며, 자문할 때는 그에 담긴 신뢰를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고객에 대한 자문은 고객의 이익 외의 어떤 이해관계에도 영향받지 않아야 한다.
자문의 함의는 제3자(보험계약자나 연금가입자 등)에 대한 영향을 포함하여 적절한 용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계리사는 자신이 그 자문에 책임이 있고 그 출처로 식별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하며, 자문이 “독립적(independent)”이라고 표현된다면 자문에 영향을 주거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 어떤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또 자유롭게 보여야 한다.
한 계리사가 보험사에 고용되어 있는데, 그 보험사 상품을 “독립적으로 평가한 자문”이라며 고객에게 제시하려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고용주(보험사)의 이익이 자문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그 자문을 “독립적”이라 표현해서는 안 된다. 행위기준은 독립이라 칭하려면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고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또한 계리사는 고객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자격으로 행동하는지 분명히 밝혀 이해상충을 드러내야 한다.
계리사는 많은 문제가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함을 명심하고, 관련 경험이 부족한 계리사는 경험 있는 계리사와 협력하거나 그 지도 아래에서만 행동해야 한다. 또한 전문적 자문에는 의견 차이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계리사의 평판을 부당하게 해치는 행동을 피해야 한다. 다만 같은 고객을 위한 다른 계리사의 업무에 대해, 합당한 근거가 있고 정당하다고 여겨질 때 고객에게 비판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는다.
계리사는 회원에게 부당한 직업적 이익을 주거나 전문직의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는 광고·홍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전문 서비스에 관한 모든 홍보 내용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은 언제든 전문 자문인을 선택·변경하거나, 제2의 의견(second opinion)을 구하거나, 사안별로 별도 자문인을 둘 명백한 권리가 있다. 그러나 새 선임의 목적이 기존 자문에 의존하는 사람·조직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사안에 이미 다른 계리사가 활동 중임을 아는 상태에서 자문 의뢰를 받은 계리사는, 단순한 제2의 의견이 아닌 한 기존 계리사에게 그 의뢰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러면 기존 계리사는 그 의뢰를 수락해서는 안 될 전문적 사유가 있는지, 진행 전 유념할 특별한 고려사항이 있는지 회신해야 한다.
이처럼 “다른 계리사가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바”를 성문화(codification)한 것은 영국에서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저자가 1966년 Faculty of Actuaries의 정회원이 되었을 때, 회원에게 주어진 지침은 연감의 한 문단뿐이었다 — “이사회는 직업 행위에 관한 엄격한 규칙을 두지 않으며, 전문직의 품위와 진실성을 지키는 회원의 판단에 주로 의존한다.” 징계 규정도 “회원의 행위가 비전문적이거나 Faculty에 불명예를 가져올 만하다는 진정이 접수되면 이사회가 조치할 권한을 갖는다”는 한 줄이 전부였다.
징계 절차가 쓰인 적은 매우 드물었고(10년에 한 번도 안 됨), 대개는 선임 이사가 회원에게 전화로 주의를 환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전문직이 크게 성장하고(1966년 Faculty 정회원 387명, Institute 1,208명), 상업적 압력이 커지고, 사무소가 수도 밖으로 분산되면서 긴밀했던 공동체가 느슨해졌다. Institute는 1965년 직업행위 각서(Memorandum of Professional Conduct)를, 1984년 직업행위 권고(Advice on Professional Conduct)를 도입했고, 기술적 사안은 지침서(Guidance Notes)로 다루었다(1975년 첫 발행, 2002년까지 36개). 여러 차례 개정 끝에 1999년 두 문서가 전문직 행위기준(Professional Conduct Standards)으로 통합되었다.
초기 영국 전문직은 소규모·긴밀한 공동체여서 명문 규칙 없이 “전화 한 통”의 비공식 규율로도 작동했다. 그러나 회원 수 급증, 상업적 경쟁, 지리적 분산이 그 토대를 허물었고, 그 결과 점점 더 명시적인 성문 기준과 공식 징계 절차가 필요해졌다. 이는 다른 전문직(법조·회계)이 거친 길과 닮았다.
행위기준은 유보된 자문(reserved advice)을 정의한다 — “법령·규정·계약 등의 요구로 인해, 정의된 의미의 계리사만이 줄 수 있으며 회원이 아니면 줄 수 없는 자문.” 따라서 기준의 완전한 엄격함은 유보된 자문에만 적용되고, 계리사가 주는 모든 자문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 변화는 전통 분야 밖에서 일하는 계리사들이 비계리사와 경쟁할 때 제약을 받는다고 호소한 데서 비롯됐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시장(고객이든 고용주든)이 “전문직 윤리”에 거의 가치를 두지 않는 듯하다는 것이다. 자격이 없을 수도 있고 전문직 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람의 자문이, 전문가의 자문과 동등하게 평가된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 “이것은 정보에 입각한 판단인가?” 어느 쪽이든 보험계리 전문직에게는 할 일이 많다. 판단이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면 전문직 윤리의 가치를 더 잘 알려야 하고, 판단이 정보에 입각한 것이라면 “전문직 윤리는 오늘날 필요 없는 낡은 개념인가?”를 물어야 한다.
최근 영국 전문직은 공익(public interest)을 크게 강조해 왔다. 이는 개별 계리사가 아니라 전문직 단체가 공익을 위해 행동할 의무를 지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국제계리사회(International Actuarial Association, IAA)는 전 세계 계리 전문직의 실무기준·자격을 다루는 전문직윤리위원회(Professionalism Committee)를 두고 있다.
영국의 선임계리사(appointed actuary) 제도는 전문직 윤리가 작동한 좋은 예로 꼽혔다. 선임계리사는 경영진(과 주주)의 압력과 보험계약자에 대한 의무 사이의 충돌을 조정하며, 정부계리사 접근권과 감독당국에 대한 내부고발(whistle-blow) 권한·의무를 큰 전문적 판단으로 행사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청(FSA)이 “계리 기능”에 대해 단지 이사회에 보고만 하는 훨씬 기술적인 역할을 제안하면서, 전문직 윤리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고객·고용주·감독당국, 그리고 일부 계리사로부터의 압력은 더 기술적이고 판단이 덜 개입하는 행위기준을 향하는 듯하다. 그러나 보험계약자와 연금가입자라는 제3자의 이익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을 대변하는 소비자 단체는 이 문제에 놀랄 만큼 침묵해 왔다. 어쩌면 보험계리 전문직 단체는 너무 늦기 전에 전문직 윤리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공익 전선에서 더 강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보험계리 전문직 윤리는 한국계리사회(Korean Actuarial Society, KAS)가 제정한 계리사 윤리기준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윤리기준은 본문이 설명하는 영국 행위기준(Professional Conduct Standards)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역량·성실성·독립성·비밀 유지·직업적 품위 등을 핵심 원칙으로 담는다. 보험업법은 선임계리사 및 독립계리사 제도를 통해 이 윤리 원칙을 법제화하고 있다.
한국 선임계리사는 본문이 설명하는 영국의 appointed actuary와 기능이 유사하다. 선임계리사는 보험료 및 준비금의 적정성을 검증하고 이사회에 의견서를 제출해야 하며, 중대한 재무 건전성 문제를 발견하면 금융감독원에 보고할 의무를 진다(보험업법 제183조~제186조). 본문이 언급한 '내부고발(whistle-blowing) 의무'가 국내법으로 명문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선임계리사가 고용주(보험사)의 경영 압력과 계약자 보호 의무 사이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실무에서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본문이 제기하는 '시장이 전문직 윤리에 가치를 두는가'라는 질문은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화두다. IFRS17·K-ICS 시행으로 계리 판단의 영향력이 커졌고, 이에 따라 계리사의 독립성과 전문적 판단의 질이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중요해졌다. 보험사 계리부서 내부의 자체 검증과 외부 독립계리사에 의한 제2의 의견(peer review) 관행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이 변화를 반영한다.
한국 계리사 자격은 한국계리사회가 주관하는 시험을 통해 취득하며, 정회원(준계리사→계리사) 자격 유지를 위해 계속교육(CPD)이 의무화되어 있다. 윤리 과정은 CPD의 필수 영역으로 포함되어, 이해상충·고지의무·기밀 유지 등의 사례를 다룬다. IAA(국제계리사회) 정회원인 KAS는 국제 윤리기준(IAA 윤리 원칙)을 국내 기준에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