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어 · 역사·생명표

초기 생명표

Early Mortality Tables  ·  원저자: David O. Forfar  ·  출처: Encyclopedia of Actuarial Science (Wiley, 2004)

읽는 법. 본문은 원문 표제어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회색 해설 · 예제 상자는 학부 입문 학습을 돕기 위해 새로 추가한 부분이며 원문에는 없습니다. 모르는 용어는 글 끝 부록을 참고하세요.
해설 이 글을 읽기 전에 — 생명표란?

생명표(life table)는 출생자 100명(또는 10만 명)을 기준으로 “각 나이까지 몇 명이 살아남는가(lx)”, “그 나이에 1년 안에 죽을 확률(qx)”, “남은 기대수명(ex)” 등을 정리한 표다. 연금과 보험의 가격을 매기려면 “이 사람이 몇 년 더 살까”를 알아야 하므로, 생명표는 보험계리의 출발점이다. 이 글은 그 생명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다룬다.

1. 로마 시대의 사망표 Roman Mortality

이른바 마케르 표(Macer's table, 기원전 40년)는 팔키디우스 법(Falcidian Law)이라는 로마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피아누스 표(Ulpian's table, 서기 220년)는 저명한 법학자이자 친위대장이었던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Domitius Ulpianus)에게 귀속된다. 이들은 일종의 계수표로, 대략적인 기대여명(expectation of life)을 나타내려 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40년의 팔키디우스 법(로마 호민관 팔키디우스의 이름을 땀)은 개인이 자기 재산의 75%를 넘는 금액을 제3자에게 종신연금으로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법을 시행하려면 로마 법률가들은 종신연금에 값을 매겨야 했고, 그들은 연 연금액에 어떤 계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이를 처리했다. 그 계수는 기대여명 e(x)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는 특정 이자율에서의 연금현가 a(x)를 썼어야 했다.

해설 기대여명과 연금현가는 왜 다른가

로마인들은 “앞으로 평균 몇 년 살까(기대여명 ex)”를 연금 햇수로 그냥 곱했다. 그러나 미래의 돈은 이자 때문에 현재가치가 작다. 올바른 연금 가격은 매년 받을 돈을 이자율로 할인해 더한 연금현가 ax이며, 이는 항상 기대여명보다 작다. 즉 로마식 계산은 연금을 다소 비싸게 매긴 셈이다. 복리 할인의 개념이 들어와야 비로소 올바른 보험·연금 가격이 가능해진다.

미국의 계리사 메이스(Mays)는 메이크햄 사망법칙(Makeham's law)을 이용해 울피아누스의 기대여명에 가장 잘 맞는 사망표를 25세부터 분석했다. 25세 미만의 사망률(특히 생애 첫 몇 해의 q0, q1, …, q5 ≈ 35%, 17%, 10%, 6%, 4.0%, 2.2%로 추정)을 이어 붙이고 메이크햄 상수 c=1.10(메이스가 쓴 1.14는 너무 높아 보임)을 쓰면, 모든 나이의 완전기대여명을 구할 수 있다.

2. 17세기의 사망 분석 Seventeenth Century Mortality

17세기의 사망 분석은 그 세기의 가장 저명한 수학자들의 이름과 연결된다. 즉 더 빗(de Witt, 1625–1672), 휘더(Hudde, 1628–1704), 하위헌스 형제(Huygens — 크리스티안 1629–1695, 로데베이크), 핼리(Halley, 1656–1742) 등이다. 위대한 아이작 뉴턴(Newton, 1643–1727)조차 여러 생명에 대한 최종생존연금(last survivor annuity) 값에 해당하는, 임차권 매입용 표에 승인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라운트 표 (Graunt, 경험 1629–60, 출판 1662)

1662년 존 그라운트(John Graunt)는 사망을 생명표(즉 lx의 표)의 형태로 표현했다. 이는 축약 생명표로, 0, 6, 16, 26, …, 76세에서의 lx 값만 주어졌지만, 사망 연구의 첫걸음이었고 거칠게나마 실제 자료(런던의 사망표·Bills of Mortality)에 기초했다. 다만 l0=100일 때 l6=64라는 값은 당시로서는 비현실적으로 높았고 표의 모양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당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페스트(흑사병)였다. 14세기 흑사병은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664–65년 런던 대역병은 약 46만 인구 중 7만 명 이상의 사망을 낳아 뉴턴이 울즈소프의 고향집으로 피신하게 만들었다. 세기 후반에 페스트는 유럽에서 사라졌다.

그라운트 표를 이용해 로데베이크 하위헌스(빛의 파동설로 유명한 크리스티안의 동생)는 1669년 처음으로 완전기대여명을 계산하는 법을 보여 주었다. 다만 (a) 그라운트 표의 모양이 부정확했고 (b) 1897년까지 출판되지 않아 보험계리학에 영향을 못 미쳤기 때문에, 그 값은 표에 재현되지 않는다.

예제 사망표(Bills of Mortality)에서 생명표로

17세기 런던은 매주 교구별 사망자 수와 사인을 집계한 ‘사망표’를 발표했다. 그라운트는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었고, 한계는 무엇인가?

그라운트는 사망자 기록을 모아 “출생 100명 중 각 나이까지 몇 명 생존(lx)”하는 축약 생명표를 처음 구성했다. 한계는 (1) 나이별 정확한 사망 자료가 없어 영·유아 사망을 추정으로 메웠고, (2) 인구가 일정하다(정상인구)고 가정했으나 실제로는 이주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사망을 표로 정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보험계리의 시작이었다.

더 빗·휘더의 사망확률 (출판 1671)

카르다노(1501–1576)는 일찍이 우연 게임을 연구했고,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와 파스칼(1623–1662)도 그러했다. 파스칼은 페르마(1601–1665)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사건의 확률 =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의 수) ÷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전체 경우의 수)”라는 평가로 확률론의 기초를 놓았다. 이 분석의 도움으로, 데카르트(1596–1650)의 제자였고 17세기 최고 정치가 중 한 명이었던 수학적 재능을 지닌 네덜란드(홀란트) 수상 요한 더 빗(Johan de Witt)은, 휘더가 분석한 1568–1590년 연금수급자의 사망 경험에 근거해 사람의 생명에 의존하는 연금의 값을 제시했다(1671).

더 빗이 (사망확률을 사망표 형태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용한 사실상의 공식 ax는 옳았다. 다만 그는 사망 패턴 가정에서 기술적 실수를 범했다. 3–52세 사망(반년당 1명으로 가정)의 2/3 비율을 써서 53–62세 사망을 유도했는데, 사망 증가에 관한 그 자신의 서술에 따르면 역수인 3/2(반년당 1.5명)를 썼어야 했다. 휘더가 더 빗의 작업이 “완벽하게 규명되었다”고 서면 의견을 준 것이 이 오류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휘더가 너무 바빠 꼼꼼히 검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 더 빗은 4% 이자에서 a(2)를 16.00으로 잘못 계산했으나, 그의 가정에서 올바른 값은 18.90이었어야 했다.

정부가 개인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으로 연금을 계속 발행했기에 그의 보고서는 사실상 묵살되었고(라이프니츠가 구하려 했으나 묵살된 탓에 실패), 약 180년간 보험계리학계에 알려지지 않다가 계리사 프레더릭 헨드릭스(Frederick Hendriks)가 헤이그 국립문서고에서 재발견했다.

브레슬라우 사망표 (핼리, 경험 1687–91, 출판 1693)

1687–91년 브레슬라우 시의 사망 통계가 라이프니츠를 통해, 런던 왕립학회 간사이자 (혜성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에게 전달되었다. 핼리는 사망을 출생부터 각 나이마다 값을 갖는 표(현대 표기의 Lx−1)로 표현했다. 그는 각 나이의 사망자 수를 거꾸로 더해 가며(정상인구 가정 — 핼리는 이것이 최선이지만 완전히 현실적이지는 않음을 알고 있었다) 표를 구성했다.

핼리는 여러 나이에서 그 결과로 나오는 연금 값(6% 이자)을 올바르게 계산해 발표했다. 더 빗의 보고서가 홀란트의 소수에게만 알려져 핼리는 그것을 몰랐으므로, 이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연금 계산이 널리 유포된 최초의 사례다. 다만 핼리가 쓴 공식 ax = Σs vs(lx+s/lx)은 현대적 관점에서 더 빗의 공식보다 열등한데, 연금의 표준편차나 고차 적률을 곧바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핼리는 나아가 두세 생명에 의존하는 여러 연금을 계산하는 법까지 보여, 그의 작업은 가히 ‘역작(tour de force)’이라 할 만하다.

브레슬라우 표는 월리스·웹스터 목사(수학자 콜린 매클로린이 자문)에 의해, 1743년 보험계리 원리에 따라 발생주의 원가추정으로 설립된 초기 연금기금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목사 미망인 연금기금(Scottish Ministers' Widows' Pension Fund)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18세기의 생명표 Eighteenth Century Mortality Tables

18세기 사망 연구는 드무아브르(de Moivre, 1667–1764), 베르누이(니콜라스 1687–1759, 다니엘 1700–82), 데파르시외(Déparcieux, 1703–1768), 오일러(Euler, 1707–1783), 그리고 1762년 설립된 에퀴터블 생명보험회사(Equitable Life) 초창기 인물들 — 드무아브르의 제자 제임스 도드슨(Dodson, 1710–1757), 리처드 프라이스 박사(Price, 1723–1791), 윌리엄 모건(Morgan, 1750–1833) — 의 이름과 연결된다.

1707년 니콜라스 베르누이는 (1669년 하위헌스가 그랬듯) 그라운트 표에 근거해 기대여명 계산법을 보였다. 사망의 균등분포와 한계연령 ω를 가정하면, n명 중 최종생존자가 죽을 때까지의 기대여명이 n/(n+1)·ω가 됨을 보였고(이는 n→∞에서 ω로 수렴), 기대여명의 중앙값과 평균의 차이도 이해했다.

도드슨의 에퀴터블 표 (경험 1728–1750)

도드슨이 런던의 사망 기록(콜빈 모리스가 펴낸 사망표, 1728년부터는 사망 시 나이가 기록됨)에서 만든 사망표로, 사망만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1762년 설립되어 과학적 원리로 운영된 최초의 생명보험사인 에퀴터블의 보험료율(3% 이자) 산정의 기초가 되었다. 도드슨의 『보험 첫 강의(First Lectures on Insurance)』는 연령별 연납·일시납 보험료의 올바른 계산, 현금흐름 추정, 민감도 검정, 잉여금 분배 등 생명보험사 운영에 필요한 보험계리 지식을 담은 주목할 만한 저작이었다.

네덜란드 표·톤틴과 코호트 (출판 1740)

니콜라스 스트라위크(Struyck)는 1740년 처음으로 남녀 별도 표를 제시했고, 케르세봄도 성별 사망률 차이를 언급했다. 그 차이는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여성이 약 15% 가벼웠다. 이들은 톤틴(tontine)에 관한 것이어서 코호트(출생집단) 표였다.

해설 톤틴, 그리고 코호트 vs 기간 생명표

톤틴은 매년 일정액을 생존자끼리 나눠 갖는 제도다(오래 살수록 몫이 커지고, 마지막 생존자가 전부 차지). 지급액을 정하려면 같은 해 가입자(=출생집단, 코호트)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 그래서 모두 죽은 뒤에야 표가 완성되는 코호트(세대) 생명표가 된다. 반대로 어떤 한 해의 모든 나이를 한꺼번에 관찰하면 기간(period) 생명표다. 코호트는 “한 세대가 실제 겪은 사망”을, 기간은 “특정 시점의 사망 단면”을 나타낸다.

노샘프턴 표 (프라이스, 경험 1735–1780)

잉글랜드 노샘프턴 마을의 사망 경험에 기초해 프라이스가 구성하고 그의 책에 실은 표다. 사망 기록만으로 만들고 정상인구를 가정했는데, 실제로는 노샘프턴으로의 이주가 있어 가정이 틀렸고, 그 결과 추정 사망률이 너무 높아 표가 부정확했다. 노샘프턴 표는 3% 이자로 에퀴터블의 보험료율 산정에 쓰여 도드슨의 계산을 대체했다. 사망률이 실제보다 높게 잡혀 있었으므로 에퀴터블은 보험사업에서 이익을 보았다. 프라이스는 보험계리학의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이며, 그의 책은 1820년대까지 표준 교과서로 남았고 그는 약 15년간 에퀴터블의 자문이었다.

데파르시외·바르겐틴의 표 (1746, 1755–63)

데파르시외는 프랑스 보험계리 분야 최초의 저작(1746)을 썼고, 그의 생명표는 톤틴의 코호트 연구에 기초했으며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바르겐틴(Wargentin)의 스웨덴 표(1755–63)는 (1) 남녀 별도 표, (2) 각 나이의 인구를 사망자 수로 나누어 사망률을 구함(즉 ‘위험노출(exposed to risk)’ 개념을 암묵적으로 이해 — 정상인구 가정에 의존하지 않음), (3) 스웨덴 통계청의 인구센서스·등록 통계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이정표였다. 프라이스가 이 자료를 생명표로 표현해 사상 최초의 전국 생명표가 되었다. 여성 사망은 평균 약 10% 가벼웠다.

4. 19세기의 생명표 Nineteenth Century Mortality Tables

칼라일 표 (밀른, 경험 1779–1797, 출판 1815)

조슈아 밀른(Joshua Milne, 1776–1851)이 만든 표로, 그는 선 라이프(Sun Life)의 초대 계리사였으며 그의 책은 생명조건부(life contingencies) 전반을 다룬 완결적 논고를 목표로 했다. 통계는 헤이샴 박사가 펴낸 자료에서 도출했다. 칼라일 표는 스웨덴 표처럼 각 나이의 사망자 수와 그 나이의 위험노출 인원으로 사망률을 구해 만들었다. 그래픽(작도) 보정법이 처음 사용되었고, 이후 메이크햄 공식이 쓰였다.

칼라일 표는 19세기 전반 영국과 미국에서 보험료율·준비금 산정(보통 4% 이자)에 널리 쓰인 주요 사망표 중 하나였다. 다만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고 피보험자의 10%만 여성이었던 탓에 완전히 적합하지는 않았다.

브루네 표·가우스의 분석 (1845)

프로이센 미망인 연금협회의 경험(1776–1845)에 기초한 독일 사망표(남녀 별도)로, 크렐레 학술지에 실렸다. 남성은 엄격한 건강진단을 거쳤으므로 이 표는 선택체(select lives)에 해당한다. 이 표는 가우스(Gauss)가 괴팅겐 대학 교수 미망인·고아 연금기금을 분석한 유명한 작업의 기초가 되었다(앞서 언급한 스코틀랜드 목사 기금과 유사). 가우스는 기혼 비율, 결혼율, 고아 연금, 재혼으로 인한 더 젊은 미망인, 반년 지급, 관리비, 기술이자율(3.5%·4%) 변동을 반영하고 5~10년마다 대차대조표를 재계산하도록 권고했다.

영국 인구 생명표 ELT 1–7 (English Life Tables)

ELT 1·2·3(남녀 별도)은 등기소 통계자문 파(Farr) 박사가 센서스 자료와 사망 등록(1837년 중반 출생·혼인·사망 의무등록 도입)에 기초해 구성했다. 30대 사람이 나이를 30세로 진술하는 경향에 대한 보정이 이루어졌다. ELT 1은 1841년 사망, ELT 2는 1838–44년, ELT 3은 1838–54년에 대응한다. ELT 7(1901–10년 사망, 1901·1910 센서스)은 저명한 계리사 조지 킹(George King)이 오스큘러토리 보간법(osculatory interpolation)으로 구성했다. 미국 정부도 1910년 센서스와 1909–11년 사망을 바탕으로, 미국계리학회 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최초의 과학적 표를 만들었다.

생명보험사 경험표 (Life Office Tables)

윌리엄 모건의 아들 아서 모건이 1834년 에퀴터블의 경험(1762–1829)을 표로 펴낸 것이 최초의 생명보험사 경험표로 여겨진다. 여러 보험사의 경험을 모은 최초의 표는 17개사 표(Seventeen Offices' Table, 1843)로, 17개 영국 보험사의 설립 시점부터 1837년까지의 경험에 기초했다. 많은 회사가 최근 설립되어 지금의 선택체에 해당하는 비중이 높았다.

20개사 표(HM·HF·HM(5), 1869)는 1862년까지의 영국 20개사 자료를 썼다. ‘위험노출 초기 인원수’ 공식을 써서, 각 나이 사망자 수를 초기노출로 나눈 비율로 사망률을 계산했다. 건강한 남녀(HM·HF)와, 평균적으로 첫 4년 반의 경험을 제외한 ‘선택종료(ultimate)’ 표(HM(5))가 발표되었다 — 이것이 최초의 선택종료 표다. 1879년 스프레이그(T. B. Sprague)는 이 자료로 (선택기간 5년의) 최초의 선택표(select table)를 구성해 HM(5)로 이어지게 했다.

해설 선택(select)·선택종료(ultimate) 사망률이란

갓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건강진단을 통과했으므로 한동안 같은 나이의 일반인보다 사망률이 낮다(=선택 효과). 시간이 지나면 이 효과가 사라진다. 그래서 가입 직후 몇 해(선택기간)는 가입연령과 경과기간을 함께 따지는 선택 사망률 q[x]+t를, 그 후로는 도달연령만 보는 선택종료 사망률 qx를 쓴다. 원문에 나온 q[40] : q[39]+1 : … : q40 = 0.44 : 0.65 : 0.72 : … : 1.0 은, 막 가입한 40세의 사망률이 줄곧 40세였던 사람의 절반도 안 된다는 선택 효과를 잘 보여 준다.

각국 보험사·연금수급자 표

소수의 프랑스 보험사는 1819–87년 피보험자와 1819–89년 연금수급자의 사망을 남녀로 구분해 분석했다(40세 여성 사망이 남성보다 약 20% 가벼움). 독일 고타(Gotha) 보험사는 1829–95년 경험을 분석했다. 미국 최초의 보험사 경험표는 1868년에 나와 1881년 30개 미국사 표(메이크햄 공식으로 보정)로 대체되었다. 영국의 OM·O[M]·OM(5)·O[NM] 표(60개 보험사, 1863–93)에서 O[M]은 선택기간 10년으로 배당부에, O[NM]은 선택기간 5년으로 무배당 보험에 처음 특화되었다. 또 ELT4M 기준 40세 인구 사망률과 O[M] 선택종료 사망률의 비가 1.41:1로, 보험사 사망이 인구보다 훨씬 가벼움을 보였다.

연금수급자 사망. 정부 연금수급자의 사망을 윌리엄 모건이 분석했으나 그가 (사망률이 너무 높은) 노샘프턴 표를 써서 정부가 큰 손실을 보았다(17세기 홀란트에서 더 빗이 발견했던 것과 같은 문제). 1819년 정부계리사 존 핀레이슨(John Finlaison, 영국계리사회 초대 회장)이 기존 표가 너무 무겁다고 보고 정부연금수급자(GA) 표 1·2·3을 도입했다. 한편 O[am]·O[af] 표는 보험사 연금수급자(남녀, 1863–93)를 위해 구성되었는데, 위 프랑스 표와 더불어 보험사 연금수급자 표로는 처음이었다.

참고 및 관련 표제어

관련 표제어. 생명표(Life Table) · 보험계리과학의 역사(History of Actuarial Science) · 그라운트(Graunt) · 핼리(Halley) · 드무아브르(de Moivre) · 곰페르츠/곰퍼츠(Gompertz)

부록. 이 글에 나온 용어 (배경지식 보충)

한국보험시장 현황 Korea Market Practice

초기 생명표(핼리·그론트 등)는 사망기록으로 생존·사망확률을 정리한 최초의 시도로, 오늘날 생명표의 원형이다. 국내에서도 통계청의 국민생명표(전 국민)와 보험업계의 경험생명표(보험가입자)라는 두 계통의 생명표가 발전해 왔으며, 보험 가격·준비금에는 경험생명표가 쓰인다.

본문이 보인 '관측자료에서 생명표를 만든다'는 기본 절차는 국내 경험생명표 작성에 그대로 이어진다. 보험가입자는 일반인구보다 사망률이 낮은 선택효과가 있어, 경험생명표가 국민생명표와 구분되어 산출된다.

실무 국민생명표와 경험생명표

국내에는 통계청 국민생명표와 업계 경험생명표가 있다. 보험가입자의 선택효과 때문에 보험 가격에는 경험생명표를 쓴다.

[한국보험시장 현황]은 한국 보험시장 실무 관점(2026.6 기준)에서 추가 작성한 것임. · 원문: Encyclopedia of Actuarial Science (Wiley, 2004), "Early Mortality Tables", David O. Forfar. · 본 해설서의 [해설]·[예제]·[부록]은 학부 입문 학습용으로 추가·구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