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계약은 수십 년에 이르는 초장기 계약이다. 그 사이 피보험자의 사정은 얼마든지 바뀌므로, 계약 조건의 변경 요청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자주 요청되는 변경은 다음 세 가지다.
저축성 보험의 보험료에는 위험보장 비용 외에 저축 부분이 들어 있다. 계약이 진행될수록 보험사 안에는 그 계약 몫의 적립금(준비금)이 쌓인다. 계약을 중간에 끝내면 이 적립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것이 해약환급금이다. 반면 순수보장성 계약(정기보험 등)은 쌓이는 적립금이 거의 없어 돌려줄 것도 거의 없다.
해약환급금은 원칙적으로 저축성 계약에만 있다. 정기보험 같은 순수보장성 계약은 큰 준비금이 쌓이지 않으므로, 보험료 납입을 멈추면 보장은 곧 소멸하며 이를 실효(forfeit)라 한다. 다만 계약에 실효방지 조항(non-forfeiture provision)이 있으면, 남아 있는 준비금을 재원으로 일정 기간 보장을 유지해 준다. 계약자는 보통 밀린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내면 계약을 부활(reinstate)시킬 수 있고, 너무 오래 지났다면 건강상태 증명이 추가로 요구된다.
계약자가 계약을 스스로 끝내는 행동은 실효(lapse)·탈퇴(withdrawal)라고도 부르며, 계약자 집단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비율을 실효율·탈퇴율·해약률이라 한다. 해약률(surrender rate)이라는 말은 보통 해약환급금 지급이 따르는 경우를 가리킨다.
많은 나라에서 양로보험은 (일정 기간 납입을 조건으로) 보증된 스케줄에 따른 해약환급금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는 계약자가 보험사를 상대로 가진 가치 있는 옵션이다(→ Options and Guarantees in Life Insurance). 보증 해약환급금은 보험사의 투자정책을 크게 제약할 수 있다. 모든 저축성 계약의 만기가 사실상 “언제든 올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보수적 기초율(→ Technical Bases in Life Insurance)과 안전자산 위주의 감독체계에서는 그런대로 양립하지만, 장기 시계(視界)를 활용해 주식형 자산으로 고수익을 노리는 보험사에는 심각한 자산–부채 미스매치 위험이 된다. 그래서 주식형 투자가 발달한 것은 영국처럼 해약환급금 보증이 의무가 아닌 나라들이었다. 다만 그런 나라에서도 마케팅상의 필요 때문에 사실상 현금가치가 보증된 상품(예: 만기일을 폭넓게 둔 노후자금용 양로보험)이 생겨났다.
해약환급금이 보증되어 있으면, 계약자는 시장이 나쁠 때도 정해진 금액을 요구할 수 있다. 주가가 떨어진 시점에 해약이 몰리면 보험사는 손실을 본 자산을 헐값에 팔아 보증금액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보증이 강할수록 보험사는 가격변동이 작은 채권형 자산에 묶이고, 보증이 없을수록 주식형 자산으로 수익을 추구할 여지가 커진다.
그러나 보증이 없는 것이 모든 계약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첫째, 실효율은 매우 높다. 아래 표는 영국 개인투자청(PIA)이 1998년 발표한 계약유지율(persistency) 조사로, 1993년에 판매된 생명보험 중 4년 뒤에도 유지된 계약의 비율(%)이다.
| 상품 유형 | 회사 전속설계사 판매 | 독립 재무자문(IFA) 판매 | ||
|---|---|---|---|---|
| 정기납 | 일시납 | 정기납 | 일시납 | |
| 양로보험 | 76.7 | 90.8 | 83.8 | 89.6 |
| 기타 생명보험 | 59.1 | 79.5 | 74.0 | 83.6 |
| 연금 | 59.6 | 97.1 | 71.5 | 94.6 |
| 자료: Personal Investment Authority, Fourth Survey (1998) | ||||
생명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인구통계적 요인은 사망이 아니라 해약임이 분명하다. 처음 가입한 계약 중 의도한 만기까지 가는 것이 소수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많은 상품이 과연 그 구매자에게 적합했는지, 즉 판매방법과 판매자 보상체계(판매시점의 높은 수수료 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둘째, 특히 초기에 해약하면 환급금이 매우 낮을 수 있다. 높은 판매비용(수수료 포함)을 회수하도록 소급적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셋째, 보험사가 해약에서 이익을 남기도록 환급금을 정하면, 위와 같은 높은 해약률 아래에서는 해약자가 만기 계약자를 크게 보조하게 된다. “해약은 계약 위반이니 공평하다”는 논리도 있었으나, 오늘날의 감독당국이나 법원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견해다.
계약 첫 해의 보험료는 상당 부분이 모집수수료·심사비 등 신계약비로 나간다. 적립이 시작되기도 전에 비용이 먼저 빠지므로, 1~2년 차에 해약하면 돌려줄 적립금 자체가 거의 없다. 이를 소급적(retrospective)으로 계산하면 환급금이 0에 가깝게 나온다. 한국의 표준해약환급금 제도처럼 신계약비 공제를 제한하는 규제는 바로 이 문제를 겨냥한 것이다.
저축성 계약을 해약하는 큰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다. 대안으로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보험사에서 보험계약대출(policy loan)을 받을 수 있다. 대출금은 보험사 대차대조표의 자산이 되고, 계약자는 준비금이 정상적으로 적립되기에 충분한 이자를 낸다. 이 방법은 사망보장을 유지한 채 유동성을 얻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하나의 대안은, 보험사가 제시하는 환급금이 너무 낮을 때 계약 자체를 매매시장(traded endowment market)에 파는 것이다(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운영). 매수인은 남은 보험료 납입을 인수하고 장래 급부에 대한 권리를 넘겨받는다.
변액(unit-linked) 계약(→ Unit-linked Business)에서는 원칙적으로 해약환급금이 해약일 현재 계약에 배정된 유닛(unit)의 가치로 정해져야 하고, 따라서 투명해야 한다. 납입완료 급부도 같은 유닛을 만기까지 그대로 두면 되는 단순한 문제다. 그러나 이는 계약의 부과수수료 구조가 실제 사업비 발생과 잘 맞을 때의 이야기다. 많은 수수료 구조는 무거운 초기비용을 제때 회수하지 못하므로(예: 보험료의 높은 비율을 곧바로 유닛에 배정), 해약 시 유닛가치에서 일정 스케줄로 차감하는 해약공제(surrender penalty)가 필요해진다. 유닛형 유배당(unitised with-profits) 계약(→ Participating Business)도 비슷하게, 시장 상황을 반영해 해약 시 유닛 액면가치를 감액하는 시장가치조정(market value adjustment, MVA)을 둘 수 있다. 영국에서는 소비자 중심 규제(그리고 부정적 여론)가 “해약환급금 보증 없음”이라는 보험사들의 면책을 점차 걷어내고 있다.
전통형 계약의 해약·변경 처리에는 두 가지 기본 접근이 있다. 둘 다 “앞으로 제공할 조건의 가치 = 현재 계약의 가치”라는 등식을 세우고, 미지수(새 보험료 또는 새 보험금액)에 대해 푼다. 좌변(장래 조건의 가치)은 반드시 전향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해약환급금의 현금지급은 그 극한적 경우다. 우변(현재 계약의 가치)은 전향적으로도, 소급적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변경·장래 갱신에 따르는 사업비 처리, 기선언 배당의 처리 등 실무적 고려사항이 많으며,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는 간단한 근사도 흔히 썼다. 대표적인 것이 비례 납입완료가액(proportionate paid-up value)으로, 납입완료 보험금액을 “전체 보험료 중 이미 낸 비율”만큼의 보험금액으로 정하는 방법이다.
보험금액 60,000,000원, 20년납 양로보험을 8년 납입 후 납입완료로 전환한다. 비례 납입완료가액 방식의 납입완료 보험금액은?
전체 240회(또는 20년) 중 8년치를 냈으므로 보험금액도 8/20 = 40%로 줄인다. 간단하지만, 이자·사망률·사업비를 무시하므로 근사일 뿐이다. 실제로는 아래 예제 2처럼 등식을 세워 푼다.
x세 가입 n년 만기 양로보험(보험금 S)이 t년 경과했고, 전향적 준비금이 tV다. 보험료 납입을 멈추고 보험금액을 Spu로 줄인다면 Spu는?
납입완료 후에는 장래 보험료가 없으므로 “장래 조건의 가치”는 보험금 1원당 일시납순보험료(양로보험 현가)에 Spu를 곱한 것이다. 등식은
예컨대 tV = 21,000,000원, 잔여기간 양로보험 일시납순보험료 A = 0.7이면 Spu = 21,000,000 / 0.7 = 30,000,000원이다. 우변의 tV를 소급적 적립액(자산지분)으로 바꾸면 소급적 방법이 된다.
해약환급금은 — 특히 보증된 경우 — 보험사가 보유해야 할 준비금 수준에 영향을 준다. 실무에 널리 적용된 스커먼(Skerman)의 다섯 원칙은 “보유 준비금은 지급될 수 있는 어떤 해약환급금도 감당하기에 충분해야 한다”는 원칙이 더해져 여섯 개로 확장되었다. 변액계약에서는 초기비용을 반영해 준비금을 줄이는 여러 방법 — 계리적 펀딩(actuarial funding), 음(陰)의 비유닛준비금(negative non-unit reserve)(대체로 칠머화에 상당) — 이 쓰여 왔는데, 이런 체계의 필수 요소가 바로 해약환급금이 실제 보유 준비금을 넘지 않도록 보장하는 해약공제 스케줄이다.
해약환급금이 보유 준비금보다 크면, 계약자가 해약할 때마다 보험사는 차액만큼 손실을 본다. 해약은 계약자가 임의로 행사하는 옵션이므로, 건전성 관점에서는 어느 시점에든 환급금이 그 계약에 대해 실제로 쌓아 둔 금액을 넘지 않도록 공제 스케줄을 설계하는 것이 안전판이 된다.
한국의 해약환급금은 감독규정으로 표준화되어 있다. 장기보험의 환급금은 보험료적립금에서 표준해약공제(미상각 신계약비 한도)를 차감해 계산하는데, 이는 본문 7장의 소급적(retrospective) 계산 — 적립금에서 해약공제를 빼는 방식 — 을 규정 형식으로 못 박은 것이다. 초기 해약 시 환급금이 0이거나 매우 작은 이유가 신계약비 공제에 있다는 점, 그 공제 한도를 규제해 계약자를 보호한다는 점 모두 본문의 문제의식과 일치한다. 실효·부활 제도 역시 약관에 표준화되어 있어, 보험료 미납 시 일정 유예기간 후 실효되고 해지환급금을 받지 않은 경우 일정 기간 내 연체보험료 납입과 (보장성의 경우) 적부심사를 거쳐 부활할 수 있다.
본문 4장의 "해약을 전제로 한 가격설계(lapse-supported pricing)" 논의는 최근 한국 시장의 최대 쟁점과 정확히 겹친다. 해약환급금을 줄이거나 없애는 대신 보험료를 낮춘 무·저해지환급형 상품이 보장성 시장의 주류가 되었는데, 이 상품의 수익성은 해지율 가정에 크게 의존한다. 낙관적(높은) 해지율 가정으로 보험료를 낮추고 이익을 부풀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자, 감독당국은 해지율 산출 원칙모형(2024)을 제시해 경과기간별 해지율 가정을 보수화하도록 했고, 이 가정 변경은 다수 회사의 CSM·손익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다. "해약은 계리 가정 중 가장 다루기 어렵고, 잘못 쓰면 상품 전체가 흔들린다"는 본문의 경고가 시장 전체 규모로 입증된 사례다.
해약의 대안(본문 5장)도 한국에 제도화되어 있다.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은 해약환급금 범위 내에서 심사 없이 받는 대출로 널리 이용되며, 경기 둔화기에 잔액이 늘어나는 "불황형 대출"의 성격이 통계로 확인된다. 감액·감액완납·연장정기보험 같은 계약변경 옵션도 약관에 존재하나 인지도가 낮아, 소비자가 변경 대신 해약을 선택하는 경향이 과제로 지적된다. 한편 본문이 소개한 보험계약 매매 시장(TEP·viatical)은 한국에는 정착되지 않았다 — 보험계약자의 계약 매도를 허용하는 제도 도입이 간헐적으로 논의되어 왔으나 입법화되지 않았다.
IFRS17의 최선추정부채는 경과기간별 해지율 곡선을 명시적으로 사용하며, 해지 옵션의 행사 패턴(금리 상승 시 저금리 저축성 계약의 해약 증가 등)을 반영해야 한다. K-ICS는 해지율의 상승·하락·대량해지 충격을 모두 보는 해지리스크를 생명·장기손해보험리스크의 한 모듈로 요구자본화한다 — 무·저해지 상품은 해지율 하락 충격이, 저축성 상품은 대량해지 충격이 지배적이 되는 식으로, 본문이 말한 "해약 행동의 양면성"이 자본 요구량으로 계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