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보르치(Karl Borch)는 1961년 보험계리학자들에게 효용이론(utility theory)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유명한 위험교환 모형(risk exchange model)을 발전시켰다. 이 모형은, 각 참가자가 자신의 상황을 효용함수(utility function)로 평가하고 풀(pool)의 다른 구성원과 위험을 교환하는 보험시장에서,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인 계약(조약)의 집합을 특징짓는다.
보르치는 이 모형을 보험회사들 사이의 위험교환에만 적용했으나, 이후 계리사들은 이를 많은 상황에 적용했다. 사실 모든 보험계약은 계약자와 보험자 사이의 위험교환의 한 형태이며, 재보험 연쇄(chain of reinsurance), 재보험 네트워크, 단체보험의 경험요율(experience-rating) 등도 모두 특정한 위험교환이다.
여러 명의 참가자(보험사·재보험사·계약자)가 서로 위험을 나누어 갖는다고 하자. 보르치 정리는 “더 이상 모두에게 동시에 이득이 되도록 고칠 수 없는” 상태(파레토 최적)가 언제 성립하는지를 수학적으로 따진다. 핵심 결론은 최적점에서는 모든 참가자의 한계효용의 비율이 서로 같아진다는 것이다.
N = {1, 2, …, n}을 위험교환 협정을 통해 자신의 안전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n명의 참가자(계약자·보험자·재보험사)의 집합이라 하자. 참가자 j는 초기 부(initial wealth) wj를 가지며, 분포함수 Fj를 따르는 비음의 손해액 Xj에 노출되어 있다. j는 자신의 안전 수준을 효용함수 uj로 측정하는데, 이는 증가함수이고(uj′ > 0) 오목한 함수(uj″ < 0), 즉 위험회피적이다. 모든 효용함수와 손해분포는 각 참가자가 정직하게 보고한다고 가정한다. 참가자 j의 초기 상황 [wj, Fj]에서의 기대효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참가자는 위험교환 조약(treaty) y = [y1(x), …, yn(x)]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 여기서 yj(x)는 각 참가자의 손해가 각각 x1, …, xn일 때 j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다. 교환 전후로 모든 손해는 그대로 지급되어야 하므로, 조약은 다음 허용조건(폐쇄교환, closed exchange)을 만족해야 한다. z는 총 손해액을 나타낸다.
교환 후 j의 기대효용은 다음과 같이 된다. 여기서 FN은 손해 x = (x1, …, xn)의 n차원 분포함수이다.
교환 전에는 각자 자기 손해 Xj만 책임졌다. 교환 후에는 “전체 손해가 이런 조합으로 나올 때 나는 얼마를 낸다”는 규칙 yj(x)를 따른다. 폐쇄교환 조건은 단지 “모두가 낸 돈의 합 = 전체 손해 z”이라는 뜻이다(돈이 새거나 남지 않음).
조약 y가 y′를 지배한다(dominate)고 함은, 모든 j에 대해 Uj(y) ≥ Uj(y′)이고 적어도 하나에서는 부등호가 엄격히 성립하는 경우를 말한다. 지배당하지 않는 조약들의 집합을 파레토 최적 집합이라 부른다. 즉, 어느 참가자도 다른 참가자의 효용을 깎지 않고서는 자신의 효용을 더 높일 수 없는 상태이다.
보르치 정리는 이 파레토 최적 조약들의 집합을 완전히 특징짓는다.
한 조약 y가 파레토 최적일 필요충분조건은, 다음을 만족하는 n개의 음이 아닌 상수 k1, …, kn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조건은 “가중치를 곱한 한계효용이 모든 참가자에 대해 동일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상수 kj를 적절히 고르면 각 kjuj′ 함수들의 정의역이 공통 교집합을 갖게 되고, 그러면 적어도 하나의 파레토 최적 조약이 존재한다. 상수 집합 (k1, …, kn)하나하나에 오직 하나의 파레토 최적 조약이 대응한다. 퇴화된 손해분포가 아닌 한, 조건을 만족하는 상수 집합은 무한히 존재한다.
yj(x)가 미분가능하면, 파레토 최적 조약은 개별 위험에 오직 그들의 합 z를 통해서만 의존한다. 즉 파레토 최적 조약은 모든 손해를 하나의 풀(pool)로 모은 뒤, 각 손해 xj의 출처와 무관하게 총 손해 z를 참가자 사이에 분배하는 공식을 제공한다.
보르치 조건 (5)에서 각 참가자가 자신의 소비포인트에서 느끼는 “1원의 가치”(한계효용)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최적점에서는 모든 참가자의 가중 한계효용 kjuj′이 서로 같아야 한다. 만약 어떤 참가자의 가치가 더 높으면, 그 사람에게 돈을 조금 더 주고 다른 사람에게서 끌어오면 전체 효용이 높아진다. 더 이상 이렇게 재분배해 이득을 만들 수 없는 지점, 즉 한계효용 비율이 균등해진 지점이 바로 파레토 최적이다.
각 참가자 j의 절대위험회피도(absolute risk aversion) rj(x)가 일정한 상수 cj라고 가정하면, 효용함수는 지수효용(exponential utility) 형태가 된다.
지수효용은 보험계리 응용에서 자주 쓰인다. 예를 들어 지수효용으로 계산한 제로효용 보험료(zero-utility premium)는 가산성(additivity)과 반복성(iterativity) 같은 중요한 성질을 갖는다. 폐쇄교환 조건 (3)과 함께 보르치 조건 (5)를 풀면 해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비례(quota) qj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부대금(side-payment) yj(0)의 합은 0이다(제로합).
이 조약은 재보험 실무에서 흔한 형태다: 즉 금전적 부대금 yj(0)이 붙은 비례재보험(quota-share)이다. 각 참가자는 모든 단일 손해의 일정 비율 qj를 지불하는데, 이 비율은 그의 위험회피도 cj에 반비례한다. 즉 가장 덜 위험회피적인 참가자(보통 대형 보험사·재보험사)가 각 손해의 더 큰 지분을 떠맡으며, 그 보상으로 풀로부터 양(+)의 부대금 yj(0)을 받는다. 주목할 점은, 비례 qj는 위험회피도에만 의존하고 상수 kj와 무관하며 협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참가자 간 협상은 오직 부대금을 둘러서만 이루어진다. (이차·로그 효용함수도 비례재보험 형태를 낳지만, 이 경우에는 비례와 부대금 둘 다 협상 대상이다.)
위험을 덜 싫어하는 참가자일수록 그에게 손해를 맡기는 것의 “효용 손실”이 적다. 따라서 전체 효용을 최대화하려면 위험을 덜 싫어하는 사람(작은 cj)에게 더 큰 비율을 맡기는 게 효율적이다. 이게 바로 qj ∝ 1/cj (위험회피도의 역수에 비례)의 직관적 의미다.
보르치 정리는 한 형태의 협력(cooperation)을 모형화한다. 협력은 풀 참가자들에게 효용 증가라는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파레토 최적 조건은 이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는 정하지 않는다. 파레토 최적 해는 무한히 많으며, 조건 1·2를 만족하는 상수 (k1, …, kn)도 무한히 많다. 각각은 협력의 이익을 나누는 서로 다른 방식에 대응한다. 참가자들의 이해는 부분적으로 상호보완적(집단으로는 파레토 최적을 선호)이고 부분적으로 충돌적(각자 최선의 kj를 원함)이다. 이는 게임이론(game theory)으로 모형화되는 상황의 특징이다. 실제로 위험교환 모형은 이전불가능효용을 갖는 n인 협력게임이다.
파레토 최적 집합은 게임이론 개념으로 줄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조건은 개인 합리성(individual rationality)이다: 어느 참가자도 자신의 효용을 줄이는 조약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강한 조건은 집단 합리성(collective rationality)이다: 어떤 참가자 소집합(coalition) S도 풀을 떠날 유인이 없어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지배당하지 않는 조약들의 집합을 게임의 코어(core)라 한다. 많은 게임은 코어가 비어 있지만, 지수효용을 쓰는 위험교환은 항상 비어 있지 않은 코어를 갖는다(Baton & Lemaire). 지수효용의 경우, 조약 y가 코어에 속할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PjS는 소집합 S의 위험에 대한 지수보험료이다.
Moffet는 계약자 1과 보험자 2를 고려했다. 손해 x가 발생하면 보험료 P를 받고 0 ≤ I(x) ≤ x인 보험금 I(x)를 지급한다. k2 = 1로 두면 보르치 정리는 다음이 된다.
I(0) = 0 조건을 넣으면 k1을 결정할 수 있고, x에 대해 미분하면 다음을 얻는다.
두 참가자가 모두 위험회피적이면 u″(·) < 0이므로 0 < ∂I(x)/∂x < 1이다. I(0) = 0이므로 평균값 정리에 의해 0 < I(x) < x가 되며, 즉 파레토 최적 조약은 반드시 어느 정도의 공동보험(coinsurance)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기부담금(deductible)만 있는 계약은 파레토 최적이 될 수 없다. 자기부담금 계약은 자기부담 구간에서 기울기가 0, 초과 구간에서 1이어서 위 조건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지수효용의 경우 파레토 최적 계약은 다음과 같이 되어, 보험금이 양측 위험회피도에 비례한다.
실제로는 계약자의 위험회피도 c1이 보험자의 c2보다 훨씬 크므로 I(x) ≈ x, 즉 전부보장(full coverage)이 근사적으로 파레토 최적이다.
손해 x ≤ d이면 보험금 0, x > d이면 x − d를 주는 자기부담금 계약이 왜 파레토 최적이 아닌가?
파레토 최적 계약은 모든 손해 구간에서 기울기가 0과 1 사이, 즉 어느 정도 공동보험이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부담금 계약은 d 이하에서는 기울기 0(계약자 전부 부담), d 초과에서는 기울기 1(보험자 전부 부담)로 “전부·전무”의 양극단이다. 따라서 위험공유가 최적이 아니고, 조금씩 분담하는 비례공동보험 형태가 더 좋다는 뜻이다.
보르치 정리는 위험을 당사자들이 어떻게 나누면 파레토 최적이 되는지를 보여, 최적 재보험 구조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위험회피도가 다른 보험사와 재보험사가 손실을 분담할 때 최적 분담이 존재한다는 결론은, 국내 재보험·공동재보험 설계의 사고틀과 통한다.
국내에서는 코리안리를 비롯한 재보험 출재, 그리고 2020년 이후 도입된 공동재보험(금리·장수 등 부채위험을 비례적으로 분담)이 이 최적 위험분담의 실제 사례다. 본문의 '서로 다른 효용을 가진 당사자가 위험을 나눈다'는 구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누가 어떤 위험을 얼마나 보유·출재할지는 위험회피도와 자본비용에 달려 있다. 보르치 정리는 공동재보험·특약 구조 설계의 근거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