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분포(empirical distribution)는 모형이면서 동시에 추정량이라는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모수적 분포에서는 분포의 이름(예: "감마")이 모형이고, 거기에 숫자를 부여(모수를 보정)하려면 별도의 추정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경험분포는 그 자체로 (분포함수로 지정되는) 하나의 모형이며, 동시에 자료 없이는 지정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하나의 추정치이기도 하다.
경험분포는 두 가지로 동기화할 수 있다. 직관적 관점은 모집단이 표본과 똑같이 생겼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포는 각 표본값에 확률 1/n을 놓아야 한다. 형식적으로 경험분포함수는
이다. x를 고정하면 분자는 모수 n과 F(x)(모집단 분포함수)인 이항분포를 따른다. 따라서
즉 경험분포함수는 F(x)의 불편추정량이고, 분산은 n이 커질수록 0으로 줄어든다(일치성).
더 엄밀한 정의는 경험우도(empirical likelihood)에서 나온다. 모집단이 표본과 똑같다고 가정하는 대신, 모집단이 어떤 이산분포를 따른다고만 가정하자. 추가 가정 없이 우도를 최대화하면 그 해가 바로 경험분포다 — 그래서 경험분포를 비모수 최대우도추정치(nonparametric MLE)라고도 부른다.
경험분포는 분포 형태에 대한 가정이 전혀 없어 모형오류(model error) 위험이 없고, 표본이 크면 어떤 매끄러운 가정보다 정직하다. 반면 표본 최대값 너머의 꼬리에는 확률을 전혀 주지 않으므로, 대형손해의 꼬리위험을 다루는 보험 문제에서는 표본 범위 밖 외삽이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뚜렷하다. 실무에서는 몸통은 경험분포로, 꼬리는 파레토 같은 모수분포로 잇는 절충(스플라이싱)이 흔하다.
널리 쓰이는 여러 추정량이 경험분포로 정당화된다. 모집단 평균의 경험적 추정량은 경험분포의 평균, 즉 표본평균이고, 모집단 분산의 경험적 추정량은 경험분포의 분산이다.
평균의 경험적 추정량은 불편이지만, 분산의 추정량 (3)은 불편이 아니다 — 불편성을 얻으려면 분모를 n−1로 바꿔야 한다. (그래도 (3)은 비모수 MLE라는 자격을 갖는다.)
관측이 좌측절단(left truncation)되거나 우측 중도절단(right censoring)된 경우의 비모수 최대우도추정치는 카플란–마이어(Kaplan–Meier) 곱-극한 추정량이며, 이는 그런 자료 수정 아래에서의 경험분포로 간주할 수 있다. 밀접한 추정량으로 누적위험률을 추정하는 넬슨–올렌(Nelson–Aalen) 추정량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생존분석 문헌을 보라.
어느 담보의 클레임 5건이 12, 25, 25, 60, 180(만원)으로 관측되었다. 경험분포함수를 쓰고, 경험분포 기준의 평균·분산과 P(X>50)의 추정치를 구하라.
경험분포는 12, 60, 180에 각 1/5, 25에 2/5를 놓는다. 따라서 F₅(x)는 x<12에서 0, [12,25)에서 0.2, [25,60)에서 0.6, [60,180)에서 0.8, x≥180에서 1인 계단함수다. 평균 x̄=(12+25+25+60+180)/5=60.4, 분산 s²=(1/5)Σ(xi−60.4)²=19,153.2/5=3,830.6(불편추정으로는 ×5/4=4,788.3). 또 P(X>50)의 추정치는 1−F₅(50)=2/5=0.4. 한 가지 주의: 표본 최대값 180을 넘는 손해의 확률은 0으로 추정된다 — 해설상자에서 말한 꼬리 외삽 불능의 한계다.
경험분포는 SOA/한국 계리사 시험의 손해분포 과목에서 모수적 방법과 대비되는 비모수 추정의 출발점이다. Fn의 불편성·분산 공식, n 분모 분산추정량의 편향, 그리고 절단·중도절단 자료에서 카플란–마이어로의 이행은 모두 단골 출제 주제다. 실무에서는 경험분포가 부트스트랩 재표집의 기반이 되고(경험분포에서 다시 뽑기), 경험손해율 산정·신뢰도 이론의 "관측 경험" 개념과도 자연히 이어진다.
"자료가 곧 모형"이라는 경험분포의 발상은 한국 보험산업의 가장 큰 통계 인프라인 경험통계 체계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보험개발원이 전 업계 계약·지급 데이터를 집적해 산출하는 경험생명표(현재 제10회, 2024.4 적용 — 평균수명 남 86.3세·여 90.7세)와 각종 경험위험률은, 평활(graduation) 이전 단계에서 보면 연령·성별 구간별 경험분포 그 자체다. 개별 회사의 상품별 경험률 분석, 실손의료보험 담보별 지급 통계도 모두 "관측 하나에 1/n"의 원리에서 출발한다.
본문이 강조한 절단·중도절단의 수정 — Kaplan–Meier 추정 — 은 국내 데이터에서 오히려 기본값에 가깝다. 생명·건강보험 경험률은 계약 해지·관찰 종료로 우중도절단된 생존자료이고, 손해보험 심도 자료는 자기부담금(좌측 절단)과 보상한도(우측 중도절단)를 거쳐 관측된다. 실손의료보험처럼 공제·한도 구조가 세대마다 다른 상품(5세대는 비중증 비급여 자기부담 50%·연 한도 1천만원)의 데이터를 합쳐 쓰려면, 어느 구간이 어떻게 잘려 있는지를 명시한 수정 경험분포가 필수다.
IFRS17·K-ICS 체계에서도 경험분포의 지위는 본문 그대로 "추정의 출발점이되, 그대로 쓰는 모형은 아니다"이다. 최선추정 가정은 경험통계에서 출발해 평활·추세(사망률 개선 등)·전문가 판단을 거쳐 확정되고, 위험조정(RA)·요구자본처럼 꼬리 분위수가 필요한 계산에서는 표본 범위 밖을 말하지 못하는 경험분포의 한계 때문에 모수 모형이나 극단값 이론으로 꼬리를 접합한다. "몸통은 경험분포, 꼬리는 모수 모형"이라는 접합(splicing) 관행이 국내에서도 표준이다.
경험분포는 관측 최댓값 너머에 확률을 전혀 주지 않으므로, 재보험 가격·99.5% 분위수(K-ICS) 같은 꼬리 계산에 직접 쓰면 위험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 실무 점검 요령: 분석 보고서에서 경험분포 기반 수치가 쓰인 곳마다 "표본 범위 안의 질문인가"를 먼저 묻고, 범위 밖 질문이면 모수 적합·EVT로 넘긴다.